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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포터는 다음과 같이 료안지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 순수한 조각, 심오한 철학, 경이로운 회화, 위대한 건축, 감미로운 음악, 절대적인 종교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료안지(혹은 용안사)내 정원. 
 

료안지를 방문한 때는 11월. 
사찰의 나무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붉게 물들어 화려한 절경을 보일 때었다. 
그리고 마주한 무채색의 정원. 암석과 모래뿐. 시간도 멈추고 계절도 사라지고 색도 지워진 공간이었다.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 쌓인 정원은 마루에 앉아 보면 액자의 그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모래 위 물결은 바위를 만나면 파동을 생성하고 바위는 절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어 그 사이로 바람도 햇살도 감상자의 마음도 머물 공간이 생긴다.
 
서양인 빈 포터는 일본식 정원 료안지를 보고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 순수한 조각, 심오한 철학, 경이로운 회화, 위대한 건축, 감미로운 음악, 절대적인 종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서양 건축가, 기업가, 디자이너에게 일본의 고산수 枯山水혹은 카레산스이는 영감의 대상이었다.
 
료안지의 정원은 압도감을 줄 정도로 웅장하지 않으며 서구의 정원처럼 설계자의 창조적인 기획력과 공간에 생물들과 기물들을 섬세하게 배치하는 감각이 전시되는 공간도 아니다. 
동서25미터, 남북10미터 소박한 공간에 모래와 15개의 바위 오직 무생물만을 배치했다.
 
정원 위 남은 것은 본질이다. 모든 변화하는 상을 지우고 거두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정원에 채운 것이다. 
무상無相한 풍경을 마루에 앉아 보고 있으면 유한한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이 지나가고 모래 위로 강물이 흐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우거진 섬이 떠있는 것이 보인다.
흘러가고 내달리고 돌아오지 않는 사라지는 것들의 속절없음이 느껴지고 그래서 애달프게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보인다.
비워내니 그 자리에 시가, 회화가, 음악이, 그리고 철학이 채워지는 까닭이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저 로마제국의 쇠망사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사실 우리는 이런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 
역사는 얼마나 진부 한가. 모든 제국의 역사는 미천한 이민족의 투지와 혁신 그리고 정복, 팽창 그 후 필연적 쇠락, 패망 그리고 또다른 이민족의 도전의 연속이다.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통해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키며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제국의 팽창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쇠락을 이끈다. 
호이징가 Johan Huizinga는 중세를 가을에 비유하며 중세가 암흑기가 아니라 인본주의가 태동하는 맹아가 싹트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엘리엇 T.S.Eliot 은 4월부터 잔인한 달이라 하며 지상의 모든 생맹체가 활기를 띄는 때 배태된 죽음에 대해 시를 읊었다.
절정에 순간 하락이 뒤따르고 수확의 시기 가을이 지나면 반드시 소멸의 계절이 다가오며 모든 발아는 죽음의 대지를 뚫고 나온다는 것을 집단의 기록된 증거들이 말해준다.
그럼에도 개체의 사건 다시 말하면 나의 하강, 퇴보, 노화, 죽음은 당연시 여기기 어려워 분노이고 비극이고 슬픔이다.
 
료안지는 일본 중세 무로마치 막부의 무인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별장을 개조해 지은 선종 사찰이다.
1192년부터 1603년 400년간 지난한 정쟁, 전란 등 그리고 8번의 대화재가 발생하는 수선한 시기였다.
이 시대를 견뎌내며 일본 특유의 세속의 무상함을 논하며 검박하고 참된 본성에 집중하는 문학, 예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슬픔, 분노와 같이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변화하는 감정과 실체에 집착을 멈추고 본성, 본질에 가치를 두는 시대정신이 발생했다.
 

가모네 쵸메이 저 호조키 方丈記


가문이 몰락하자 은자의 삶을 택한 가모노 쵸메이는 호조키 라는 그의 성찰적인 수필집을 다음과 같이 맺는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일생도 달이 기울어 산등성이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머지않아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가는 도중에 걷는다는 ‘삼도의 어둠(三途の闇)’으로 향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 와서 이도저도 아니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고 하여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도 집착은 금물인 것이다.
지금 이 초암의 한적함에 애착을 품고 있지만 애착을 갖고 있다 한들 그저 그뿐인 것이다. 더 이상 필요 없는 즐거움을 말하여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
 
동시에 불교적인 성찰을 근거한 사상(선종)은 종교적인 이념을 넘어서서 위와 같이 문학, 예술에 영향을 주고 정신을 고양시키고 지배층의 취향을 만들어내는 근거였다.
큰 것보다 작은 것, 사실적인 보다 심적이고 상징적인 것 완전한 것보다 불완전한 것을 선호하는 미적 가치관이 생성되었다.
정적미를 기조로 한 섬세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을 부르는 말이 있다.
유현미幽玄美. 료안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이 것일테다.

그리고 일본 정원서의 고전, 작정기作庭記 (794년‑1185년)는 이런 유현미를 성취하기 위한 테크닉의 정수가 담겨 있다.
정원의 재료가 소박할지라도 그 돌들의 조형적 독립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정원이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돌들을 배열하는 방법
그리고 극도로 추상적인 언어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도록 정원을 기획하는 방법이 료안지에 재현되었다.


 Kitawaki Noboru Ryoanji garden 1939.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


료안지 정원이 아름다운 것은 앞서 말했듯이 감상자 스스로 상상하고 풍경이 암시하는 바를 유추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알고 있는 진부한 역사의 사실, 인생의 비밀을 재확인했을 뿐이지만 사실 대부분 시간 동안 망각하고 산다.
때때로 망각에서 깨어날 시간이 필요하다.
 
인센스 홀더 리버는 료안지의 형태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했고 무엇보다 료안지가 주는 그 심상을 사용자들과 나누고 싶어 만들었다.
인센스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떨어진 재를 홀더를 밀어 쓸어내는 과정.
사라지는 인센스를 지켜보는 마음, 흩어지는 연기가 남기고 가는 향을 느끼는 것 그리고 소복히 쌓인 재를 밀어 털어낼 때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


John Cage at  Royanji Kyoto,1962 from The Japanese Garden by Sophie Walker